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메리칸 드림 (문단 편집) == 배경 == 과거 20세기 초, 테일러에 의해 T/M 연구에 기초한 [[과학적 관리론]]이 주창되면서, 그리고 포디즘[* [[포드(기업)|Ford]]ism. 자동차 생산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립라인 및 연속공정 기술을 이용한 표준화된 제품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축적체제'를 일컫는 단어.]이 나타나면서 미국의 [[자본주의]]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자본주의 프로세스를 진행할 것인가" 의 문제에 천착한 결과, 미국인들은 생산절차에 조금만 체계화, 효율화를 기하기만 해도 생산성이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하자 생산성은 무려 350배에 가깝게 폭증했다. 이와 같은 사회상 속에서, 경영자들은 새롭게 나타난 [[경영학]]의 통찰에 기댈 수 있었다. 이들은 모든 성과기준을 최고의 생산성에 맞게 재조정했고, 이에 미달하면 태업으로 간주했으며, 이를 초과하면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경영자들은 또한 노동조합들과의 협상에서도 조금 더 유연해질 수 있었는데,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졌으므로 노동시간을 감소하기로 합의할 수 있었고, 마찬가지 이유로 임금의 5배에 가까운 인상까지도 합의할 수 있었다. 관리가 화두가 되는 시대이다 보니 회사마다 전문화된 관리부서가 출현했고, 결국 [[중간관리직|중간 관리자]]라는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편, 빠방한 임금에다 성과급까지 제시되자, 노동자들은 "가혹하게 굴리긴 하지만 그만큼 돈을 주는구나, 열심히만 일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보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 무렵부터 현실은 [[카를 마르크스]]의 메시지로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전후, [[관료제]]와 포디즘을 통해 극도로 단순해진 업무는 저숙련 노동자들을 매료시켰다. 생산공정이 단순화되어 근로의 진입장벽이 철폐되자, 못 배우고 못난 사람이라도 성실하기만 하면 적어도 빌어먹지는 않고 살 수 있었다. 관료제를 통해 정년이 보장되고 미래가 확실해지자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먹고 살 걱정에서 벗어나서 점차 자신의 인생을 길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전세계의 수많은 [[이민]] 희망자들이 미국을 대안으로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대략 이 무렵부터라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개념은 곧 [[금융]] 시스템을 급속하게 발전시켰다. 예전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비싼 물건들, 그리고 주택까지도 할부로 구입하거나 담보대출을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모든 것들은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것처럼,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똑같은 직장에서 당연히 일하고 있을 것" 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가득했기에 가능했다. 어쩌면 인류 역사에 최초로, 처음부터 자영농이 아닌 사람이 노동만으로 자신의 주택을 가질수 있게 되고, 그런 사람이 다수집단이 된 사례가 바로 이 20세기 등장한 노동자 중산층이다. 이전까지의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미개간지 개발이라는 뼈를 깎는 힘든 노동과 곳곳에 산재한 치안위협때문에 이상만큼 성공률이 높진 않았다. 하지만 20세기 초 유럽에서 발발한 두번의 세계대전과 이때문에 발생한 폭발적인 수요는 미국에 어마어마한 공급기회를 만들었고, 원래도 부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물욕센서|부자가 될 욕심이 가득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는 엄청난 돈벌이의 기회가 되었다. 역사 이래 이렇게 욕심 가득한 국민이 대다수인 나라만이 결국 국가 전체의 경제 발전을 성공시켰고,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낸 대한민국 역시 4천만 국민 모두가 부자되려는 욕심에 필사적으로 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게 해야 수요가 창출되고 공급이 발생하여 경제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구 경쟁력이 넘쳐나는 국가라도 이게 없으면 경제발전의 시작조차 끊지 못한다.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과 미국의 치안체계 확립, 인간의 욕망을 가감없이 그대로 이용하는 자본주의의 방식은 무일푼 청년들에게도 내 밥벌이를 할 수 있을거라는 꿈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들은 [[베이비붐 세대]]라는 점에서 정치체제에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다수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의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은 이들의 어마어마한 노동력 숫자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이들의 욕망을 실현할 비전을 제시해야 했다. 부자가 되고픈 욕심이 생긴 국민들에게 이렇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성공의 법칙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제시된 아메리칸 드림은 의무교육을 통해 일정 수준의 지식과 사회룰을 익힌 뒤 공장 노동을 통해 착실히 급여를 쌓고, 착실한 저축과 신용을 바탕으로 한 모기지 대출을 통해 장기 할부로 주택을 구매하고 그 빚을 착실히 갚아 청산한 뒤 은퇴하면 퇴직금과 그동안 부동산 버블로 인해 가격이 오른 주택, 직장활동을 통해 쌓은 복지제도와 연금을 통해 자산을 쌓아 노후를 안락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도 가장 문턱이 낮은 상태에서 도전할 수 있는 안락한 삶의 설계 방식인 것이다. 그것이 다수의 표를 가진 노동자에게도, 이 노동자들을 최대한 싸게 부려먹어야할 자본가에게도 윈윈전략이 될 수 있던 최선의 방식이었다.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나서 허리를 편 미국인들은 본격적으로 삶을 즐길 방법을 찾게 되었다. 빠듯하던 지갑이 넉넉해지고 근로시간이 단축되면서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나자, 미국인들은 "여가" 라는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행이 대중화되고 관광업이라는 개념이 대두되면서, 출장서비스, 위락, 유흥 등 각종 3차 [[서비스업]]까지 함께 연쇄적으로 출현하였다. 이만한 소비능력과 소비심리를 갖춘 사람들에게 생산자들은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어필할 필요가 있었고 이것은 다시 TV [[광고]]의 폭증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거대한 내수시장과 결합하여 방송사들에게 막대한 수입을 안겨주었으며 막대한 광고료에서 얻은 재원으로 고액의 제작비가 드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들 프로그램이 해외에 수출됨으로써 문화에 있어서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넓혀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곧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기초로 하는 [[대중문화]]의 폭발적인 발전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과적으로 [[대량생산]]에 걸맞는 대량소비를 이끌었고 그만한 소비능력을 갖춘 새로운 사회계층, "[[중산층]]" 이 나타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당시 중산층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다음과 같았는데, 아메리칸 드림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하얀 울타리로 두른 앞뜰과 뒤뜰이 있고, 자가용과 차고가 딸린, 교외의 어느 2층짜리 주택을 할부로 사서, 한 손에는 [[햄버거]]와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자녀와 함께 흑백 TV 앞 소파에 앉아서 [[야구]]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 물론 소비가 소비를 부추기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사회구조는 다시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상품의 종류를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변해 갔다. 그러나 이 때의 미래에 대한 예측성과 계층이동의 양호함, 그리고 터질 듯한 자유와 기회의 보장은 전세계의 수많은 이민 희망자들에게는 매혹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곧 미국에만 가면 나도 저렇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고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